우리 나라가 서구 자본주의 문물을 들여온 것이므로 은행시스템은 캐나다의 것과 한국의 시스템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환경과 제도 때문에 확실히 달라서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1. 계좌유지비
우리 나라 은행들과 비교하여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보통 예금의 계좌유지비일 것이다.
앞에 다른 글에서도 말했지만 시중은행이면 잔고를 매일 4000불 이상 (강조함. 매일!) 유지해야 함이 보통이고, 상품에 따라 기준 금액은 더 낮거나 높을수 있다.
다만 본인의 신분이 학생이라거나 이민 온지 얼마 안 됐다거나 한다면 한시적 무료를 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은행원한테 물어보길 바람. 뭐든 물어봐야 얻을 수 있다.
그게 아니면 인터넷 전문 은행에선 계좌유지비를 물리지 않는다.
2. 개인수표 (체크) 문화
위에서 말한 보통 예금 계좌를 체킹 어카운트 (Chequing account) 라고 하는데 이게 당좌 계좌가 된다. 수 많은 다른 종류의 계좌 상품들이 있지만 외부와의 거래가 이뤄지는 계좌는 이 계좌라고 생각하면 된다. 계좌 이체도 하고 현금카드도 쓰고 신용카드 대금도 내고 공과금도 내고. 요새는 실물로 수표를 주고 받는 일이 많이 줄긴 했으나 그래도 종종 쓰인다. 아파트 임대 계약 같이 한 번에 좀 큰 금액을 줘야 한다든가 나이 좀 있는 사람들은 관성적으로 수표 많이 쓴다. 내가 다른 사람한테 수표를 끊어줘야 한다면 은행에 수표책 (cheque book) 발행해달라고 하면 된다. 보통 수수료 있음. vip 면 면제일 수도 있겠지만.
3. 수수료... 수수료... 또 수수료...그리고 벌금... 벌금... 또 벌금...
은행 거래 할 때 조심할 점이 각종 수수료가 정말 많다는 거. 위에서 말한 계좌유지비는 말 할 것도 없고 이 외에도 뭐 좀 했다 하면 돈이 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뭘 좀 늦었거나 잘못 했다는 사소한 실수에도 은행은 그거 고쳐준다고 돈 뜯어감.
예를 들어 내가 어떤 경우가 있었냐면, 내 보통예금 계좌에 신용카드 대금 자동이체를 걸어놨는데 주로 매달 10일이나 11일에 돈이 빠져나가길래 그 때 계좌에 돈을 넣어 놓을 생각이었다. 근데 한 번 주말이 꼈을 때 그보다 먼저 8일에 카드사에서 계좌로 지불 요청을 보냈고, 계좌에 금액이 충분치 않으니 지불 불가 신호가 갔겠지? 그랬다고 계좌에서 50불 벌금을 매겼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다시 얘기하는데 카드대금 납부 지연 벌금이 아니다. 보통예금 계좌에서 벌금을 매긴 거다. 전화해서 따졌더니 네가 오랜 고객이라 한 번 봐주겠다며 돌려줬던 거 같기는 하다 (몇 년 된 일임) 그래서 내가 대체 카드대금 결제일이 언제냐 물었더니 그 건 자기도 알 수 없다. 그러니 계좌에 항상 넉넉하게 잔액을 유지해 두라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게 무슨 멍멍이 소리야! 한국 카드사들은 고객이 결제일도 지정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이렇게 캐나다에서 한국에서처럼 생각하고 거래 하면 수수료나 벌금을 몇 만원씩 내게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웹사이트에서 fee 부분 잘 읽어 보고, 항상 미리미리 준비하고 확인 하길 바람. 다만 신기한 건 은행 간 송금에는 수수료가 없다는 거.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4. 타행이체는 며칠이 걸릴지 모름
타은행 송금을 한국에서 한다면 몇 초 걸리지? 이것저것 정보 넣는 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전송 누르면 째깍, 1초만에 도착할 것이다. 근데 캐나다는 얼마가 걸린다? 최대 5 영업일 걸림. ㅋㅋㅋㅋㅋㅋ 5일이 아니라 5 영업일이다. 내가 나한테 보내든 남한테 보내든 차이 없다. 중간에 주말 껴 있으면 더 걸릴 수 있음. 진짜 미치고 팔딱 뛸 수준. 그리고 내 통장에 돈이 들어 온게 보인다 하더라도 5영업일 끝날 때까지 바로 딴 데로 옮기거나 출금할 수 없다. 그래서 계좌에 현재 이용 가능 금액(Available amount)이 따로 표시 되곤 한다. 그러니 급하게 돈을 보내거나 바로 써야 한다면 은행간 송금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럼 급하게 돈 보내야 하면 뭘 하면 되는데? 금액이 크다면 (1만불 이상) 어쩔 수 없다. 미리 계획해야 됨. 하지만 액수가 적다면 (몇 천불 이하)?
5. 인터랙 이 트랜스퍼 (Interac e-transfer)
1회 $3000 이하의 금액을 상대방의 이메일로 비밀번호와 함께 전송하는 시스템. 받은 사람은 그 이메일을 열고 나의 어느 계좌에 입금할지 자기 은행을 아무데고 선택한 후 송금인이 알려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입금된다. 보내는 사람의 은행 계좌 조건에 따라 완전 무료, 몇 회까지 무료, 전부 유료 등이 있으니 조건을 잘 확인해야 되는데, 이것 역시 우리 나라처럼 1초 송금은 아니다. 내가 해봤더니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금액이 적으면 상대적으로 빨리 10여분 안에 도착하고, 금액이 좀 많다 싶으면 한 시간, 혹은 그 이상도 걸리는 것 같다.
그 외에는 한국하고 기본적인 건 같다. 불과 2,3년 전까지도 ATM에 입금하려면 봉투에 현금을 집어 넣고 그 봉투를 기계에 입금하면 나중에 그걸 수거 해간 은행원이 OK 하고 입금 완료... 이런 수준이었는데 요새는 바로 현금 세는 ATM 기계들이 많아졌다. 어차피 다들 카드 쓰고 각종 폰 페이 쓰니까 이런 ATM 도입이 의미가 있나 싶지만.
캐나다 선진국 아니었어? 뭐 이래? 라고 나도 처음엔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기에 깊은 뜻이 있었으니...
우선 송금에 이렇게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보이스 피싱이 없다. 보이스 피싱의 관건이 뭔가. 속도 아닌가. 송금 한 번에 며칠씩 걸리면 우리 나라처럼 몇 천만, 혹은 몇 억원에 달하는 돈을 중간에 가로챌 수가 없다. 5일동안 사람을 계속 홀릴 순 없을 거란 말이지. 5일 동안 전화 안 끊고 있을 수도 없고. 인터랙으로 3천불 이하 송금을 노린다고 하면 할 수는 있지만, 이것도 상대방이 받기 전까지는 송금 취소를 할 수 있다. (물론 수수료 있음) 그리고 1일 최대 송금 금액이 4천불이고 한 달에 1만불 제약이 있어서 인터랙으로 아무리 많이 보내고 싶어도 거기까지다.
그리고 이렇게 송금이 느리고, 고객 당 최소 4천불 유지가 잘 되기 때문에 은행들이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 우리 나라처럼 은행끼리 예금 이자 경쟁 붙어서 고객들이 우루르 이 은행 예금 해지해서 1초만에 저 은행으로 돈 옮겨서 순간적인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또 요새는 큰 의미가 없긴 하지만 ATM기를 불편하게 해서 은행원을 직접 만나는게 차라리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도 어찌 보면 그만큼 은행원이라는 직업을 유지시키는 효과가 있다.
비대면, 빨리빨리, 편하게, 편리하게...그게 진짜 좋기만 한걸까? 길게 보면 우리 모두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요새 한국의 금융권 희망퇴직 바람 보면서, 만 40세부터 신청 받는다는 보도를 접하면 안타깝고, 이렇게 편하게만 가는 건 아니지 않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걸 이해하면 캐나다에선 좀 늦어도 그러려니 하게 되고 미리미리 계획적으로 살게 되니 나쁘지 않다.
캐나다에서 이걸 명심하면 된다. "빨리 하고 싶으면 돈을 더 내면 됨." 하지만 돈을 더 내도 빨리 안 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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