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야기에는 인생 철학이 담겨있다. 두고두고 곱씹어 보게 만드는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과 삶이 있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는 어쩌면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인지도 모르는, 운명 대 선택의 서사가 있다. 원작을 읽지 않아 이것이 원작에서도 같은지, 아니면 드라마 작가의 각색인지는 모르겠다. 또 작가의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드라마 전반에 걸쳐서 그 뚜렷한 대비가 보였고, 그것이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진다고 느꼈다.
우리 인생은 운명일까, 선택일까?
드라마에서는 닮은 운명을 가진 세 쌍의 사람들을 병렬 배치하여 보여준다.
영조 - 정조(이산)
영빈 - 의빈(성덕임)
제조상궁 조씨 - 홍덕로
성인 덕임이 나온 첫 장면에서, 덕임이는 공주들과 하게된 필사 일에 영희와 복연이를 끼워주고, 이에 경희가 불만을 표출하자 이런 말을 한다. "궁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난 작은 것이라도 선택하며 살고 싶어."
한 편, 성인 이산도 거의 첫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혹, 저하께서는 한 나라의 국본이 아니라 평범한 필부가 되고 싶다 원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라는 스승의 질문에, "천명을 받은 자가 어찌 불평을 하겠소 ... 하늘의 명이 내게 내려와 장차 나 한 사람이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게 될 것이오. 그 천명 앞에 결코 숨지도, 도망가지도 않겠소."
이 두 사람의 말에서 추측하건데, 둘은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조선시대에선 타고난 신분을 바꿀 수도 없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왕세손이고 궁녀라면 오히려 일반 백성 보다도 더 선택권이 없이 정해진 항로대로 사는 인생을 부여 받은 거나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싶다. 영조 역시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나 천명으로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고 말했으며, 드라마에서 그려지지 않아 모르지만 궁녀로 살다 사도세자를 낳고 또 정조의 할머니가 된 영빈 역시 자기의 삶을 본인의 선택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반면 주어진 운명을 거슬러 본인의 선택대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조상궁 조씨와 홍덕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옆자리, 그리고 그 이상을 탐냈다는 공통점과 동시에 둘 다 지략가이고 킹메이커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물론 제조상궁 조씨의 이야기는 픽션인 것 같지만.
재밌는 것은 그 자리-지존의 옆자리-를 원했던 사람은 얻지 못 했고,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는 아이러니다. 문학작품들엔 이런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시크릿> 류의 자기계발서와는 다르게, 간절히 원한 사람은 가질 수 없고, 원한 적 없었던 사람이 그것을 얻게 되는 것, 또는 귀중한 무언가를 자신을 위해 쓰려하지 않고 오직 대의를 위했던 사람이 그것을 얻게 되는 스토리 말이다. 원하는 것을 얻은 스토리를 희극, 못 얻은 스토리를 비극으로 보기 쉬운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행복한 거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 하면 불행한 걸까? 처음부터 운명적으로 내 것인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다면, 원래부터 정해진 대로 결과가 나온 것뿐이라면, 우리는 불행해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임금들은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에게 주지 않았을까? 영빈의 자리가 제조상궁 것이었더라면, 정조의 오른쪽 자리가 덕로의 자리였더라면? 제조상궁과 홍덕로는 세자/세손이 왕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는 상당히 유용한 사람들이지만, 그 이후에는 지존의 위치까지 넘볼 수 있을 정도의 야심가였기 때문에 영조와 정조 모두 곁에 오래 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영조와 정조는 임금으로서 두 사람(궁녀와 신하)의 인생을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결정해버린 셈이 되는데, 이는 당시 시대가 전근대 사회였기에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자신은 할바마마와 같은 사랑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정조가 영조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덕임이에게 후궁으로서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줬다는 점이다. 화성 건설을 통해 백성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등 노예제도를 철폐하고자 했던 정조의 개혁가 다운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으로, 그런 사람이 18세기 말 한 나라의 지도자였다는 것, 또 그 때가 어쩌면 조선의 근대화를 꾀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는 역사를 생각하면 아쉽고, 임금의 권위에 도전할 정도 (왕권에 대한 위협)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백성 개인이 어느정도 선택권을 지닌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정조라는 인물의 지향점과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변화를 잘 드러낸 설정이라 좋았다.
제조상궁과 홍덕로 두 사람이 본인의 야망이 좌절되었을 때 자결이란 선택을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 둘은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고 싶어했기에,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 했기에, 그리고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믿었던 사람들이기에, 결국 그 것을 이루지 못했으니 죽음이나마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를 죽인 것은 항아님이라오." 라는 덕로의 이상한 말에 대한 제 해석은요, 그러니까 이건 꽤나 영리한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봤다. '니가 있는 그 자리가 내 자리였어.' 라는 좌절도 있지만, 원래 정조 역사에서 홍국영이라는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컸다고 한다. 홍국영은 정조라는 킹의 메이커였고, 오른팔이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세도가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정조 시대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홍국영의 역할이 굉장히 컸는데, 이 드라마에서 성덕임이 그 역할을 대부분 가져감으로서 비중이 많이 작아져 홍국영이란 인물의 존재의 의미가 상당히 사라진 측면이 있어서 결국 성덕임이란 배역이 홍국영이란 배역을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 "나를 죽인 것은 항아님" 이라는 대사가 어찌 보면 작가의 귀여운 고백처럼 들리기도 했다. 원래 문학에서 같은 운명을 지닌 인물이 둘은 필요 없다. 하나는 죽어줘야 함.
드라마 내용 자체로만 보자면, 홍덕로가 정조에게 남긴 서찰에서,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진 것" 이라고 한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책장을 찢은 사람이 생각시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속인 것. 즉, 그는 그 소동이 있었던 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하의 옆자리에 정해져 있던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덕임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곧 본인의 존재 의미 자체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영광의 길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는 것만큼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게 하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덕임이 결국 궁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마 마지막 희망까지 놓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제조상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왜 제가 아니고 영빈이었습니까?" 라고 영조에게 질문을 했고, 그의 대답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나와 하사 받은 북촌의 집을 화완옹주에게 주겠다고 그 양아들에게 말하기 전에 이미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해왔는데, 처음부터 선택된 자가 아니었다는 그 깨달음, 그 앞에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 하지 않았을까. 행궁 습격이라는 위험한 도박을 했던 제조상궁 조씨는 어쩌면 이미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느꼈을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조의 말대로 멀리 떠나 편히 쉬며 사는 것은 죽어 있는 것과 같았기에 무리수를 두더라도 계속 나아 갈 수밖에 없었을, 원래 그런 인물인 것이다.
이 밖에도 자신의 정해진 운명 속에서 시청자에게 선택의 질문을 던지는 인물들이 더 있다. "왜 나를 살려줬어요?" 하고 물은 덕임이에게 "난 뭐 내 맘대로 좀 하면 안 되나?" 했던 월혜 언니의 말에서, 그 역시 그런 역할로 길러져서 늘 타인의 의도대로 살아오던 중에 혼자 할 수 있는 작은 선택의 용기를 냈던 사람. 또, 운명을 거스른 선택을 하고 죽은 영희. 어쩌면 가장 운명 순응적이었을 것 같은 인물이 가장 대담한 선택을 하고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작은 것이라도 선택하며 살고 싶다던 덕임이를 비롯한 이런 궁녀들의 삶의 태도가 작가가 현대를 사는 시청자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피할 수 없으면 그냥 받아들여봐. 최선을 다 해봐. 그러다 보면 작은 행복이라도 생길지 몰라."
한 가지 짚어 보고 싶은 것은, 산과 덕임 두 사람 역시 둘의 의지로 서로를 선택하고자 한 게 과연 맞을까 하는 것. 덕임이가 처음에는 철썩같이 우연이라고 믿었던 산이와의 인연, 바로 산이는 영원히 몰랐을 제조상궁의 빅픽쳐 때문이다. 제조상궁은 애초에 덕임이를 점 찍어 놓고 동궁의 궁녀로 배정했으며, 동궁의 서고를 지키게 했고, 세손이 배우는 책을 같이 배우게 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릴 때 영빈의 조문을 가게 해 산이를 만나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비록 결론이 제조상궁의 꾀 대로 되지 않았을지 모르나 덕임이가 산이의 눈에 들게 된 것까지는 제조상궁의 계략대로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고, 그렇게 보면 제조상궁의 복수도 반 쯤은 성공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덕임이는 후궁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을까. 내가 누군가의 장기 말이라니, 너무 무력하고 비참해지잖아. 이런 덕임이의 심정은 출궁 당해 청연군주 가에서 머물게 된 이유가 정조의 배려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직접 표현이 된다. 쳇바퀴를 계속 도는 다람쥐처럼, 무언가의 손아귀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느낌은 한 인간으로서 무력감과 좌절감을 안겨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제조상궁의 빅픽쳐에도 불구하고, 나는 산과 덕임 두 사람의 인연이 운명이자, 덕임이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조상궁이 의도하지 않았던 어린시절 덕임과 산의 운명적인 만남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지만, 둘을 엮이게 만든 것은 책장을 찢어 세손을 보호하고자 했던 어린 생각시의 선택이었다.
나는 "사랑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내 것 보다 앞에 두는 것"이라는 <겨울왕국> 올라프의 말이 사랑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냉정하게 보아 호르몬의 작용이든 유전자가 시키는 것이든 인간의 본능이기에 선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사람을 사랑할 지 말 지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희생과 책임이 따르지 않는 감정만을 사랑이라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행위로 여기지 않는가. 덕임이는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또 그렇기에 처음부터 산이를 사랑하기를 선택한 것이고 실천했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처음에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 믿었을지라도.
책장을 찢어 감춘 일, 밤을 새가며 필사 한 일, 영조에게 가 세손을 용서해달라 간청한 일, 행궁 습격 사건 때 연을 띄우고 내달려 역모를 전하려 한 일 등, 산이가 말했던 것처럼 덕임이는 언제나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그를 지키길 선택했다.
사람들이 왜 덕임이의 마음을 모르겠다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말로 사랑한다 해야만 사랑인가? 덕임이는 늘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덕임이는 항상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산이가 원하는 것을 앞에 두었고,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지 모르는 상황에 처할지라도 산이를 구하려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허락된 즐거움과 자유를 포기하면서 전하의 소원대로 곁에 남았고, 비록 죽기는 했지만 애도 낳아주었고,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산에게 주기만 하다 세상을 떴다. 덕임이가 말하지 않았나, "아직도 모르시옵니까. 정녕 내키지 않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멀리 달아났을 것이옵니다. 결국 전하의 곁에 남기로 한 것이 제 선택이었음을 모르시옵니까" 라고. 이게 사랑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사랑인지 나는 모르겠네. 산이는... 바보.
오히려 산이에게 덕임이는 단 한 번도 1 순위였던 적이 없다. 언제나 백성이 먼저였고, 정사가 먼저였고, 법도가 먼저였다. 그런 산이 앞에서 덕임이가 연모한단 말을 하지 않으며 마지막 한 줄기 자존심이나마 지키고 싶어했던 것이 너무나 이해되지 않나. 어쩌면 산이는 죽기 전 별당 문을 나서려던 그 때 그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덕임이를 항상 뒤에 두었다는 것을, 그래서 사과의 의미로 두 번 다시 이 손은 절대 놓지 않겠다고 한 것이 아닐지.
"왕은 궁녀를 사랑했다. 궁녀도 왕을 사랑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Yes. Yes. Absolutely yes.
덕임이는 어쩌면 산이 덕임이를 사랑한 것보다 더 산을 사랑했고, 운명에 끌려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한 삶을 살았다.
나는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제를, "정해진 운명 속에서 사랑만은 선택하고자 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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